페이지 정보
본문
대구서 또다시 '간병 살인' 치매 아버지 돌보던 아들 극단적 선택, 국가가 간병비·간병의 질을 책임지는 공적 체계 절실···
① 치매 아버지 홀로 돌보다가···또 '간병 살인'
최근 간병 살인이 대구에서 잦습니다. 1월 17일에도 간병 살인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17일 오전 달서구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5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습니다. 경찰이 숨진 남성 옷 주머니를 살펴보니 유서로 추정되는 쪽지와 집 주소를 알 수 있는 신분증이 나왔습니다. 유서는 "안방에 아버지가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묻어주세요"라는 글과 함께 집 현관문 비밀번호도 적혀 있었습니다. 경찰이 집에 들어가 보니 안방에는 80대 아버지가 머리에 둔기를 맞고 숨진 상태였습니다. 결국 아들이 아버지를 숨지게 하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입니다.
경찰 이야기를 종합하면 아들은 15년 전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를 홀로 돌봐왔습니다. 그런 아버지가 치매 판정을 받은 건 8년 전이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건강보험공단의 장기 요양 등급을 판정받은 이력이 없었고 달서구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도 등록되지 않아 지원을 받지 못했습니다. 대학 강의를 해왔던 아들은 일을 그만두고 아버지를 모셔 왔는데 형제들이 준 돈과 아파트 담보대출로 생활비를 마련했습니다. 아들은 기초생활수급 가정도 아니었고 요금 체납 등 위기가구 반응도 없어서 지자체 복지망에 포착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관할 달서구는 복지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습니다. 돌봄 취약 가구였지만 지자체나 국가가 치매 환자에게 지원하는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는 말이 됩니다. 아들은 결국 오랜 간병으로 몸과 마음이 지치고 경제적 어려움도 겹쳐 비극적인 선택을 한 것 같습니다.
2023년에는 1급 뇌병변 장애가 있는 40대 아들을 보살펴온 60대 아버지가 아들을 흉기로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한 일도 있습니다. 그 사건 이후 경찰과 검찰이 60대 아버지를 수사했고, 대구지검은 1월 5일 살인 혐의로 60대 어버지를 구속기소 했습니다. 2023년 10월 집에서 아들을 흉기로 찌른 아버지는 범행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해서 의식불명 상태였지만 외출 후 돌아온 부인이 발견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장애로 거동이 불편해지자 다니던 직장까지 그만두고 식사와 목욕 등 간병을 도맡아왔습니다. 검찰은 가족이 피고인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고 아버지가 아들을 헌신적으로 돌보아온 점을 고려해 기소했다고 밝혔습니다.
가족을 죽인 사람들···간병은 가족 차원을 넘어선 '사회적 문제'
지병 등을 앓는 가족을 보호자가 오랜 기간 돌보다 결국 환자를 살해하는 선택을 하는 '간병 살인'이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면서 정부와 지자체의 세부적인 대책이 필요합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공공책임 돌봄 입법화 등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선 우리복지시민연합은 "현행 사회안전망 밖에 방치된 가족 돌봄에 대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컸지만 눈에 띄는 개선책은 여전히 부재하다"며 "노노 간병, 독박 간병, 간병 살인, 간병 지옥 등 신조어를 양산하며 비극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은재식 우리복지시민연합 사무처장 "제도 밖에 있었다면 왜 이 사람들은 제도 안으로 포함되지 못했는 건지, 각종 이런 제도들을 어떻게 연계할 것인지 이런 부분들에 대한 원스톱으로 지원할 수 있는 시스템들이 지금 필요한 것입니다."
시민단체는 "돌봄 문제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사회문제"라며 "반복되고 있는 가족 돌봄 살인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가 더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고 했습니다. 이와 함께 "국민건강보험 간병 급여 도입, 중증 장애인에게 필요한 만큼의 활동 지원 서비스 제공 등 보편적이면서도 특성에 맞는 '맞춤형 공공책임 돌봄 시스템' 로드맵을 하루빨리 설계하고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대구지부와 함께하는 장애인부모회도 "매년 여러 차례 벌어지는 장애인과 그 가족의 비극적인 죽음은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며 "지역사회 내에서 제대로 된 지원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대구에서는 중증장애인과 그 가족은 차라리 죽음을 선택하는 것이 삶을 선택하는 것보다 쉬운 것일지도 모른다"라고 비판했습니다. 장애인부모회는 "대구시는 더 이상 장애 부모 뒤에 숨어서는 안 된다"며 "중증장애인의 지원체계, 자립 지원, 돌봄 부담에 대한 대책 마련을 위해 적극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습니다.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대한민국에서 '간병 지옥'을 넘어 '간병 살인'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은 국가적 문제라고 봐야 하는데, 국가가 간병비와 간병의 질을 책임지는 공적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습니다. 1월 19일 최재형 국민의힘 의원이 고령화 시대에 사적 간병비를 제도적으로 해결하자며 국회에서 토론회를 열었습니다.
이날 토론회에서 국가가 간병을 책임지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습니다. 김진현 서울대학교 간호대학 교수는 "2020년 기준 간병인을 쓰는 유급 간병률과 가족 간병률 등을 합친 입원환자의 사적 간병률은 60.5%로, 가족의 간병 부담이 상당히 높다"며 "고령화에 따라 간병 부담과 간병 서비스 수요는 더욱 증가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재철 대한간호협회 정책전문위원은 "비용은 비용대로 지출하면서 전문 의료인이 아닌 간병인이나 보호자의 돌봄으로 감염, 낙상, 욕창 등의 환자 안전 문제가 방치되고 있다"며 "모든 세대의 돌봄의 질 확보를 위한 '예방적 사회투자 정책'이란 관점으로 문제 해결 접근이 필요하다"고 짚었습니다.
2021년 5월에는 생활고 탓에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방치해 죽음에 이르게 한 22살 아들의 간병 살인이 있었습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가족 돌봄 청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도 했는데, 가족을 돌보거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족 돌봄 청년(영 케어러)' 문제를 우리 사회가 그냥 두고 보고 있다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일부 지자체는 가족 돌봄 청년을 지원하기 위한 대책을 내놓기도 했습니다. 서울 강남구는 2023년 3월 6일부터 24일까지 14~34세 이하 청년들을 대상으로 '가족 돌봄 청년 지원사업' 신청을 받았습니다. 당초 지원 인원은 중위소득 12% 이하 50명이었는데 대상자에게는 생계 지원, 건강 지원, 주거 지원, 자기 계발과 문화 여가를 300만 원 한도에서 지원하기로 했습니다. 특화 서비스로 세탁, 청소 등 가사 지원 서비스를 주 1회 2개월간 제공하기로 했습니다. 그렇지만 신청기간 동안 당초 예정 인원인 50명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17명 만이 신청했습니다. 대상자를 직접 발굴하는 것이 아닌 신청을 받다 보니 충분히 홍보가 되지 못했고, 대체적으로 살림살이가 풍족한 강남구란 점도 작용한 것 같습니다.
가족 돌봄의 무게···지자체 차원의 대책은?
광주 서구는 전국 최초로 가족 돌봄 청년 39명에게 수당을 지급하기로 했습니다. 2024년 2월부터 월 25만 원씩 1년 동안 300만 원을 지급합니다. 사업의 효과에 따라 지원 대상과 지급 금액을 늘려가기로 했습니다. 충남 보령시는 부양가족의 간병비 부담 해소를 위해 2023년 54명의 저소득층 대상자에게 간병비를 지원했고 2024년에는 추가 사업비를 확보해 간병비 지원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대구시는 2024년 2월부터 밀알재단과 MOU를 맺고 돌봄 청소년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습니다. 조사를 통해 100명을 발굴해 1인당 500만 원씩 5억 원을 지원합니다. 외톨이 청년이나 은둔형 청년들을 지원하는 부분도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대구시 관계자는 "달서구에서 발생한 간병 살인의 경우 상담만 신청했더라도 심리지원이나 긴급복지 지원 등 다양한 지원 서비스를 받을 수 있었는데 안타깝다"며 "건강보험공단 등과 협의해 홍보를 더욱 강화해 나가겠다"고 말했습니다.
- 이전글“간병인 10명 가운데 8명이 쉬는 형국” 24.02.27
- 다음글치매·간병 부자 사망…복지부 장관 “치매 환자 발굴 힘써달라” 24.01.2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