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 정보
본문
23년간 딸을 간병하던 엄마는 결국 흉기를 들었다
2022. 01. 07 14:35 작성
"선처해 주세요" 탄원 쏟아진 대구 22세 청년의 간병살인
법원은 '안타까운 사정' 반영할까⋯'간병살인' 언급 판결문 분석
뇌출혈로 쓰러진 아버지를 홀로 간병하던 청년 A씨(22)가 아버지를 죽인 혐의(존속살해)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에 많은 사람들이 눈물지었다. 생활고를 겪으면서도 간병을 견디다 범행을 저질렀다는 딱한 사정에 공감하면서다. 다른 살인 사건이었다면 "엄벌에 처하라"는 비난이 쏟아졌겠지만, 이번에는 "선처하라"는 탄원이 이어졌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열린 항소심(2심)은 1심과 같은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대구고법 제2형사부(재판장 양영희 부장판사)는 A씨에게 살인의 고의가 있었다고 인정하며 "범행 동기 등을 떠나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봤다.
여론과는 온도 차가 있던 법원의 판결. 유독 A씨에게 가혹한 결과였을까. 이를 확인하기 위해 로톡뉴스는 A씨처럼 일명 '간병살인'을 저질러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에 대한 판결문을 분석해 봤다. 대법원이 공개한 최근 4년 치 형사 판결문(살인 또는 존속살해 혐의) 중 '간병'이 언급된 12건이다.
'홀로' 간병 도맡으면서 사건은 시작됐다⋯최장 간병 기간 23년
간병살인 사건의 공통점은 "피고인들이 모두 홀로 간병했다"는 점에 있었다. 생전의 피해자들은 뇌졸중, 담낭암, 치매 등을 앓고 있었고 24시간 돌봄이 필요했지만, 피고인들은 대부분 간병인을 둘 형편이 되지 못했다.
판결문에서 확인한 최장 간병 기간은 23년. 직장을 그만두고 조현병 등을 앓던 딸을 치료하는 데 전념했던 A씨 사건이다. A씨는 간병을 오로지 혼자 감내해야 했다. 남편 역시 간 이식을 받는 등 몸이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도 A씨는 딸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딸의 병세가 계속 악화되자 결국 A씨는 흉기를 들었다.
해당 사건을 맡은 서울 남부지법은 A씨에게 징역 4년을 선고했다.
19년간 교통사고로 지체 장애 2급 판정을 받은 배우자를 돌본 B씨, 15년간 뇌졸중으로 쓰러져 혼자 거동이 불가능한 딸을 간병한 C씨도 마찬가지였다. 장기간 간병에도 그들은 피해자들을 먹이고, 대소변을 받아내는 등의 일을 묵묵히 해냈다. 본인을 돌볼 틈도 없었다. 피고인 대다수가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고, 그러다가 범행을 결심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판결문에선 범행 당시 피고인들의 상태를 "한계상황" 혹은 "심신 쇠약에 따른 자살 충동", "삶에 회의를 느낌"이라는 식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12건 중 9건이 평균 징역 4.2년 실형
안타까운 사연들이지만, 살인은 살인이었다. 범죄 가운데에서도 가장 무겁게 처벌되는 살인죄(형법 제250조). 법정형은 사형,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존속살해죄는 그보다 무거운 사형,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이었다.
실제로 12건의 사건 중 9건의 피고인들은 평균 4.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판결문에는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인간의 생명을 침해했다"며 이들의 행동을 지적하는 재판부의 목소리가 담겨 있었다.
다만, 오랜 기간 아픈 가족을 헌신적으로 돌보다가 심각한 육체적·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살인에 이른 만큼 그 동기를 참작했다. 판결 대부분이 대법원 산하 양형위원회가 마련한 양형기준상 '참작 동기 살인'으로 분류돼 형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이는 범행의 동기에 '특히 참작할 사유'가 있다고 보고, 형을 참작하는데 기본 권고 형량은 징역 4~6년이다. 그렇지 않으면 10년 이상이 기본 권고형이다.
집행유예가 선고된 사건은 총 3건이었다. 형량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으로 동일했다. 공통점이 있다면 피고인 모두 70~80대로 고령. 판결문에서는 재판부가 이들의 나이를 보며 장기간 수형생활에 어려움을 겪을 것을 고민한 흔적이 보였다.
지난 2018년 치매를 앓는 아내를 4년간 간병하다가 농약 등을 먹인 뒤 살해한 D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의 나이는 83세. 자식들에게 짐이 될까 범행 직후, 본인도 농약을 마시고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재판이 열리던 무렵에는 폐렴으로 입원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고인의 건강 상태로는 수형생활을 견디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법률사무소 태희의 김경태 변호사는 "D씨의 경우, 고령으로 건강이 좋지 않다는 점과 피해자를 살해한 후 자신도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고 농약을 먹은 후 구조됐다는 범행 경위 등이 참작돼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비극적인 사건⋯피고인 잘못만은 아냐"
재판부는 간병 책임이 가족에게 전가되는 현실도 지적했다. 범행을 저지른 피고인 탓만 할 수 없다는 취지였다.
지난해 11월, A씨 사건 1심을 심리한 서울남부지법 제13형사부(재판장 신혁재 부장판사)는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와 보호의 몫 상당 부분을 국가와 사회보다 가정에서 감당하고 있다"며 "이 사건과 같은 비극적인 결과를 오로지 피고인의 책임으로만 돌리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국가와 사회도 간병 책임을 부담해야 하는데, 개인이 떠안게 되면서 참담한 일이 벌어졌다는 안타까움이었다.
이와 같은 취지의 문장은 다른 판결문에서도 종종 발견할 수 있었다.
"거동이 어려운 환자를 적절하게 치료할 제도적 뒷받침 등이 충분하지 못한 환경을 감안하면, 사건의 결과를 피고인의 책임으로 돌리기 어렵다" -지난해 1월, 인천지법
간병에 대한 제도적 뒷받침이 있었다면 사랑하는 가족을 살인하는 비극적인 일을 막을 수도 있었다는 뼈아픈 지적이기도 했다.
이 기사는 2021년 12월 03일 네이버 로톡뉴스 프리미엄에 먼저 발행된 기사입니다.
첨부파일
-
1641533184262712.webp (66.0K)
4회 다운로드 | DATE : 2023-06-22 10:29:28
관련링크
- 이전글한인 운영 너싱홈에서 한인 시니어 2명 피팔 23.06.26
- 다음글질병관리청, 제3차 감염법 기본 계획 수립...백신 개발 핵심기술 확보와 고부가가치백신 개발 추진 23.06.09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